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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타/욱브로 라이프

커피를 마시지 않는 이유 (feat. 조깅)


나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커피를 마신 적이 없다. 대학생 때도 친구와 카페 갈 때만 종종 에스프레소를 마셨다. 알바 인생이었던 나에게 에스프레소 외의 음료는 사치였다. 어릴 때부터 자존심과 고집이 셌던 나는 다른 무언가에 의지하는 것을 싫어했다. 그 이유였을까, 잠 깨려고 커피를 마시는 것은 내 정서와 맞지 않았다.

특히 극한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커피를 마시지 않으려 했다. 고3 때 어머니가 커피를 권했지만, 커피를 마셔서 대학을 가면, 좋은 대학을 가도 (어차피 못 갔겠지만)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서 거절했다. 대학생 때도 시험 기간이 되면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. 그때는 카페에 가서 병 음료를 마셨다.


그러다 자존심 때문에 일찍 죽을 거라고 느낀 사건이 터졌다. 대학교 4학년 때, 전기기사 필기시험을 보기로 했다. 한 달 동안 열심히 준비하기로 다짐하고 2월 3일에 원서접수를 했는데 하필 그날 학군단에서 2주 뒤에 한라산 등반을 갈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. 타이트하게 계획을 짰기 때문에 하루도 시간을 뺄 수 없던 상황에서 1박 2일을 통으로 날리게 된 것이다.

고민 끝에, 공부를 몰아서 하고 가기로 했다. 여행 가기 전 이틀을 잠 한숨 안 자고 공부했으며 당연히 커피는 마시지 않았다. 이때 나는 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지 이해가 됐다. 1박 2일 여행 중에도 술 마시고 노느라 2시간 밖에 못 잤는데 계산해보니 4일간 2시간 자고 한라산 등반을 한 것이다. 집에 오자마자 뻗을 줄 알았지만, 잠이 오지 않았다. 잠자는 법을 까먹었나 보다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그대로 28시간을 잤다.


카페인은 좋은 자극제다. 하지만 많이 마시면 몸에 내성이 생겨 그 효과가 점점 떨어진다. 난 카페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. 아직은 카페인 없이도 잘 살고 있기 때문에 벌써부터 카페인에 의존하기는 싫다.

대신 커피를 마셨을 때만큼 정신이 깨어있고 싶다. 그래서 운동을 하며 열심히 체력 관리를 하고 있다. 커피를 한 번 마신 사람이 커피 없이는 생활이 힘들다고 느끼는 것처럼, 운동도 안 하면 체력이 떨어질 거란 불안감에 계속하게 된다.

7월 19일, 율동공원에서 아침 조깅 중


커피가 몸에 나쁘다고 단정 짓지는 않지만, 심리적으로 나를 더 나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. 종종 여자친구한테 "피곤해 죽을 것 같은데 커피는 마시기 싫다"고 하는데 그럼 굉장히 답답해하며, "나중에 결혼해서 이런 자존심 센 아이가 태어나면 어떡하냐~ 엉??"라고 한다. 그런 사람 잘만 만나고 있으면서..